50을 앞두고도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난다는 것

 




에어컨 없이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보내는 작은 방의 실제 모습

올여름은 유난히 길다.

낮에는 숨이 턱 막히는 더위.

밤에는 잠을 빼앗아 가는 열대야.

그런데 50을 앞둔 지금도 내 방에는 에어컨이 없다.

돈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이 집은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들어온 집이었다.

하지만 함께 미래를 그리던 사람과 헤어졌고, 나는 곧 이사를 갈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에어컨 설치를 미뤘다.

‘조금만 더.’

‘이사 가면 그때 달지.’

그 ‘조금만’은 어느새 반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여름을 버텼다.

잠은 얕아졌고, 더위는 익숙해졌지만 몸은 솔직했다.

결국 지인의 배려로 며칠 동안 시원한 곳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저 푹 자고 아침을 맞이했을 뿐이다.

그 평범한 시간이 오히려 한 가지를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좋은 잠은 사치가 아니라 삶의 기본이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미루는 일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쌓인다는 것.

설거지도 그렇고,

빨래도 그렇고,

청소도 그렇다.

관계를 정하는 일도,

대출금을 납입하는 일도,

내 삶의 방향을 정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미룬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미래의 내가 감당할 몫으로 남는다.

돌이켜보면 내가 미룬 것은 에어컨 설치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결심도 함께 미루고 있었다.


벽걸이 에어컨이 설치된 작은 방의 미래 모습을 AI로 재구성한 장면




내년 여름에는 이 방이 조금 달라져 있었으면 좋겠다.

벽에는 작은 에어컨 하나가 달려 있고,

지금보다 조금 더 정돈된 방에서,

더 이상 ‘언젠가’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기를.

그리고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웃고 싶다.

“그때는 그런 여름도 있었지.”

댓글 쓰기

0 댓글